- 본관(本貫): 전의(全義)
- 자(字): 경천(敬天)
- 호(號): 국은(菊隱)
- 전의이씨 시조(始祖)이신 휘(諱) 도(棹), 고려 개국공신(高麗開國功臣) 태사공(太師公) 이 치(李齒)장군의 31세손(世孫)
- 1874년 10월 30일(음 9월 21일)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에서 부친 명호(命 鎬)의 아들 한풍(漢豊), 한응(漢應), 한승(漢昇) 3형제 중 차남으로 탄생, 후에 당숙(堂叔) 경호(璟鎬)의 양자로 입계(入系)하다.
- 1889~1891 육영공원(育英公院 관립 영어학교) 졸업하다.
- 1894 사마방(司馬榜)에 시부(詩賦)로 응시, 성균관진사(成均館進士)에 합격하다.
- 1897 한성부(漢城府) 주사(主事)
- 1899 관립 영어학교 교관(敎官)
- 1901 영국과 이탈리아 양국 공사관(公使館) 3등참서관(三等參書官)으로 런던에 부임
- 1904 주영 공사 민영돈의 귀국으로 서리공사(署理公使)에 임명되어 대영외교를 전담, 8월에 제1차 한일협약으로 한국의 자주 외교권이 박탈당한 가운데 고군분투하다.
- 1905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영일동맹조약에 ‘일본이 한국에서의 정치, 경제, 군사상의 지도감독 및 보호 등의 조치를 취하는 권리를 영국은 인정한다‘는 조문을 넣어 개정하자, 영일동맹의 부당성을 들어 영국정부에 항의하다.
- 5월 12일(음 4월 9일) 국가와 민족에 드리는 유서를 쓰고, 백형(伯兄)과 부인(夫人)에게 각각 유언장(遺言狀)을 남긴 후 목을 매어 자결하다.
- 유해(遺骸)는 7월에 해로(海路)로 돌아와 용인 덕성리 금현에 안장(安葬)되고, 정부에서는 열사의 절의(節義)를 특별히 포양(襃揚)하여 종이품가선대부(從二品嘉善大夫) 내부협판 (內部協辦)에 승서(陞敍)하고, 관원을 특파하여 치제(致祭)하며 장충단(獎忠壇)에 배향(配 享)하다.
- 가주(家主)이신 형님께 유언으로 부탁하시기를 나중에 끝 아우가 아들 셋이 되면 한 아이 양자를 들여 주십사 하셨는데, 마침 상봉(相鳳), 상용(相龍), 상학(相鶴), 상기(相麒), 상규 (相虯), 상경(相鯨) 등 6형제가 나서, 차남 상용이 후사(後嗣)를 잇다.
더 자세한 약전은 아래의 공훈전자사료관 링크에 있습니다.
https://e-gonghun.mpva.go.kr/user/IndepCrusaderDetail.do?goTocode=20003&mngNo=8936